[4월 29일 주일 낮 예배] 하나님께서 쓰실 자의 선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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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옥 작성일07-05-05 17:59 조회1,71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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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 쓰실 자의 선발기준
사사기 7장 2절~8절 말씀
오늘 본문 속에는 “미디안 사람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의 선발 기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서 군사를 모집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3만 2천명이 군사로 모집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삿 7: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2만 2천명이 물러가고 1만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삿 7:4)고 하시면서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삿 7:5)고 하셨습니다. 이 때 적을 향하여 보면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가 300명(삿 7:6)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 300명으로 하여금 미디안과 싸우게 하시고, 나머지 9,700명은 돌아가게 했습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이 하나님의 선발기준을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자긍하지 않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2절 =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스라엘과 미디안 사람이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사람이 3만2천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시고 전쟁에서 이기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겼다”고 할 사람들의 마음을 보시고 300명의 용사를 뽑으십니다.
본문2절의 “자긍하기를”이라는 말은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긍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즉 겸손한자를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자긍하다’는 말은 교만하다, 우쭐대다, 자만하다와 같은 말입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므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불화가 일어납니다.
사단은 원래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가 사단이 된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이사야 14:14)
또한 하나님을 가만히 생각할 때 내가 한 일이 생각나면 교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생각나면 겸손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겸손하여 하나님께 사용받는 인생이 됩시다.
두 번째, 하나님은 두려워 떨지 않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전쟁이 일어 났는데 왜 하나님은 두려워 하는 사람은 돌아 가라 했을까요? 그들이 전쟁을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그들이 머물렀던 곳의 지명이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들이 진을 쳤던 곳이 “하롯”이라는 곳인데, 이곳의 지명은 “떨림, 공포, 두려움”의 뜻입니다.
여러분, 두려워 떠는 자는 영적으로 어린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장성한 신앙인을 사용하십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첫 번째: 버릴것을 버리는 신앙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의 말씀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또한 장성한 신앙인은 담대한 사람입니다.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보내라는 것은 그들이 두려움을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보내라는 것은 이미 모세 시대부터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 중의 하나입니다. 신명기 20장 8절은 말씀합니다.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두려운 사람을 돌아가라는 것은 전 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입니다.
두려움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 좋은 예가 민수기에 나오는 열두 명의 정탐꾼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보다는 믿음이 없어 두려워하는 10명의 정탐꾼의 이야기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믿음을 주는 이야기보다, 두려움을 주는 이야기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과학의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것이 뉴욕에 와서는 폭풍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평, 염려를 전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실천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세상을 두려워하여 떨거나, 심지어 그 두려움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은혜를 나누어도 부족한데 왜 두려움을 전파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는 자들이라도 어떻게 긁어모아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비록 숫자가 적더라도 하나님의 일에 목숨을 건 용감한 용사가 있으면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두려움이 없는 사람, 즉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1백명을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마귀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출가하여 출산하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은 전도하여 새생명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세 번째의 사람은, 물을 손으로 핥아 먹는 사람입니다.
물을 핥아 먹는 자는 말씀을 먹을 줄 아는 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신령한 말씀을 먹을 줄 아는 자를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많은 숫자의 군대를 줄이셨습니까? 어떻게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추려냅니까? 5절 말씀을 보시면,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혀로 물을 핥아서 마신 사람과 무릎을 꿇고 마신 사람을 구별하라고 합니다.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핥은 자가 삼백 명이고, 나머지 9천 7백명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십니다. 이 사람들을 돌려보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3백명만을 남겨두시는 걸까요? 이것은 물을 마시는 자세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사람은 얼굴을 물 속에 넣고 마신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군인입니다. 적과 싸우기 위한 큰 전투가 곧 있을 겁니다.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언제 활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전쟁에 나갈 자를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가만히 묵상해 보면 이런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엎드려서 마신 사람은 은혜가 된다면 이단이든 삼단이든 아무 말씀이나 먹는 자입니다.
무릎을 꿇고 마신 사람은 영적 전쟁을 의식하기는 하나 완전치 않은 사람이며,
손으로 떠서 마신 사람은 영적 전쟁을 의식하여 성령의 검을 소유하기 원하여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전쟁에 승리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아멘으로 받을 수 있는 영적 귀가 되어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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