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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원 성지방문(손양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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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기 작성일17-10-22 13:57 조회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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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수) 성지 애양원 방문 

 

손 양 원

호는 산돌.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가 장로인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1915년 칠원보통학교 재학 중 궁성요배를 거절하여 퇴학을 당했으나, 선교사 맥레이(Macrae, L.)의 항의로 복교되었다.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아버지가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자, 학업을 중단한 후,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가모 중학교(巢鴨中學校)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경남성경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부산 나병원교회, 울산 방어진교회·남창교회 및 양산의 원동교회 등에서 전도사로 활동하였고, 동양선교회에서 일하던 중 초량교회의 목사 주기철(朱基徹)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38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여수의 나병환자 요양원인 애양원(愛養院)의 교회에서 봉사하였으며 신사참배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1940년 체포되어, 광복이 되어서야 출옥하였다.

 

그 뒤 애양원교회에서 다시 일하다가 1946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반란사건 당시 두 아들이 공산분자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계엄군에 의하여 살해자가 체포되어 처형되려는 순간에 구명운동을 전개하여 안재선이라는 살해범을 살려내고 양아들로 삼았으나 곧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공산군에 체포되어 미평에서 그들의 총탄을 맞고 순교하였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일대기가 출판되어 영어와 독어 등으로 번역되었고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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