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인도의 실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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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mjongchul 작성일18-10-28 15:14 조회1,8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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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도의 실제 1" 에 이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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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어떠한 분인지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찬양을 인도하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4) 우리는 모든 인도하심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개방한 사람이어야 한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의지하고, 성령께 그 마음을 개방하고, 그분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든지 나의 뜻과 감정과 상관없이 주님께서 주님 뜻대로 하실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모험이라고도 볼 수 있고 좀 위험스러운 것도 있다.
나는 모험하기를 좋아 한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많기 때문에 예배 찬양을 들었을 때 그 곡이 잘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어떤 예배나 모임에 참석 했을 때 찬양을 인도하는 형제나 자매에게서 주님의 인도 하심을 보게 될 때나, 대단히 흥미롭고 진지하게 주님을 경험하게 될 때, 기름부으심을 느끼 게 될 때 나는 그것을 그 자리에서 배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삶속에도 적용시켜 보기도 하고, 또 찬양을 인도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것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모험하고 싶은 그런 마음들, 배운 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성령 께 서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만 알면 즉시 그것을 끄집어내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용을 하다가 실수한 적도 많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혹시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물론 하나님은 결코 나에게 실패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 으시지만 내 스스로 느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정죄는 할 필요가 없지만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엄격하게 자기를 판단하고 자기의 실 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지적할 줄 알고, 회개할 줄 알고, 고백 할 줄 알고, 그리고 자기의 죄를 꾸짖는 것에 대해서 인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 는 것들을 절대로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예배인도자로, 찬양인도자로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인도하심 이라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배우라.
성령께 마음을 개방시켜 놓고 배우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주님께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실수하는 것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웠을 것이다.
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역시 배운다.
그럴 때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찬양인도자로, 예배인도자로 주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기도 한다.
5) 우리의 영을 해방시켜 주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것이 좋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찬양을 드려야 한다. 입술로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영을 만지실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놓 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는 우리 영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영을 해방시키신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찬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 경험, 감정의 법을 따라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서 찬양하는 것이다.
생명에는 법칙이 있다. 인간의 생명을 따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의 영을 따라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입술을 열어서 하나님을 찬양 하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 계신 그 주님께서 생명으로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 타내면서 찬양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받고 싶어 하는 찬양과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성령으로 표현되는 것 뿐이다. 아멘!
6) 우리는 친양과 예배를 통해서 더 많이 주님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예배를 드릴 때 간혹 사람이 인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런 예배들은 진부하고, 지루하고 어떤 인간의 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것은 주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표현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 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더 많이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찬송의 제목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찬양거리가 된다.
우리가 예배하는 모든 모임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즉시 그곳에서 주님을 경험할 수 있다.
그 모임 가운데서 춤추시며 다니시는, 기뻐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을 드는 것이나, 춤을 추는 것이나, 입술을 열어 찬양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이 주님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주님을 경험할 수 있다.
7) 우리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사43:21)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찬송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찬송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 부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께서 듣고 싶어하시는 바로 그 찬송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자체가 노래가 되고, 주님을 위한 음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악보에 옮겨서 곡으로 만들 때, 주님 앞에 드려지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
C. 찬양을 인도 할 때 실제로 필요한 부분들
우리는 처음부터 깊은 경배 속으로 들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여러 상황 가운데서 모여 왔기 때문이다.
찬양인도자가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해서, 자기는 지금 경배를 드릴 준비가 되었다고 해서, 곧 바로 경배를 드리는 찬양으로 시작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나를 아시는 것처럼, 함께 예배드리기 원해서 모이는 사람들도 알고 계신다.
예배인도자는 회중들을 깊은 예배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기뻐하시는 주님을 노래하면 서, 찬양가운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깊은 경배 가운데로 들어가기 전에, 찬양을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예배인도자 의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목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하나님께 깊은 경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가야한다.
찬양하는 모든 순간 이 방향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떤 때는 우리의 기쁨의 노래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경배'라고 하는 이름에 가리워서, 찬양 과 노래의 열기가 식어지는 것 같다.
나는 경배도 중요한 만큼 찬양도 중요하고 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편을 보면 '노래하라'고 하는 말씀도 많이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노래고, 이것은 찬양이고, 예배라고 구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모두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라고 생각한다.
마치 무지개가 여러 색깔이 있어 그것이 조화가 되어져 아름다운 무지개로 표현되어 지는 것 처럼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다운 예배라고 이해하고 싶다.
간혹 예배를 드리다 보면 기쁨의 찬양, 경배의 찬양도 아닌 뭔가 주님이 다르게 인도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명확하게 어떤 찬양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지금 어떤 찬양을 하고 있는데 그 다음 찬양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하나님께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메들리 곡을 해왔기 때문에 찬양인도자는 이 부분서 갈등을 할 수 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주에 했던 곡은 이번 주에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적인 마음에서 온 것인지, 주님의 인도하심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해봐야 한다. 그런 상황을 닥쳐봐야 한다.
그렇게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설명하면 또 하나의 원칙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이 그렇게 똑같이 부르라고 하시면 그렇게 부르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고, 박수치라고 하시면 박수치고, 이렇게 인도하심을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에 했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그런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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